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 (문단 편집) == 범인 검거 == [[파일:external/file.instiz.net/f92ff9f25335461f4557d8c7616018b7.jpg]] [[제13대 대통령 선거|대선]] 전날인 [[12월 15일]]에 대한항공 [[DC-10]] 특별기 편으로[*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87/1799557_19322.html|KAL기 폭파사건 용의자 마유미, 서울 도착(1987년 12월 15일 MBC 뉴스데스크)]]] [[대한민국]]에 도착한 [[김현희]]. 자살[* [[혀를 깨물면 죽는다|혀를 깨물어 죽는다]]는 미신적 행위가 아니라, 독약을 사용한 자살을 막기 위해서이다. 하술한 것처럼 공범인 김승일이 체포 당시 몰래 숨겨놓은 청산가리를 삼켜 자살했기 때문이다.]을 막기 위해 [[재갈]]을 물리고 그 위에 [[테이프]]를 붙여 놓은 상태이다.[* 압송되는 김현희의 모습은 꽤나 큰 파장을 일으켰다. 수백 명을 살해한 공작원이라길래 험상궂은 인상을 생각한 국민들은 의외로 곱상한 김현희의 모습에 놀라 '죽이긴 아깝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훗날 이 반응을 전해 들은 김현희는 북한에서였다면 요물이라고 더 잔혹하게 죽였을 텐데...라며 희한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대선 전날이라는 절묘한 시점은 훗날 음모론이 피어나는 주요한 이유가 되었다. 후술하는 '무지개 공작'을 참고.] 조사 과정에서, 중간 기항지였던 [[아부다비 국제공항]]에서 내린 [[일본인]] 남녀 승객 2명이 출국을 시도하다 위조여권 사용으로 검거되었다는 정보를 입수하였고[* 어떤 음모론에선 중간 기착지에서 여객기에 타고 있던 한국의 고위 공직자들이 우르르 내렸다고도 하는데 확인된 사실은 아니라고 한다.], 즉시 이들이 검거되었다.[* 테러 용의자로 검거된 것이 아니라 위조여권사용혐의로 검거되었다.] 검거된 남성의 신원은 70세의 노인 하치야 신이치(蜂谷眞[*구자체 일본 [[신자체]]인 '真'으로 써야 옳을 듯하지만, 일본에서 인명의 경우엔 [[정자(한자)|구자체]]를 쓸 수 있다. 그리고 [[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nNewsNumb=201905100026|여권 사진]]을 보아도 구자체인 '眞'으로 쓰여 있다.]一, 본명은 김승일(金勝一)), 여성은 25세의 하치야 마유미(蜂谷眞[*구자체]由美)였다. 이들은 부녀지간으로 위장하고 있었는데 검거 후 담배갑에 숨겨둔 [[사이안화포타슘|청산가리]] [[앰풀]]을 깨물어 자살을 시도했고, 이 과정에서 하치야 신이치는 사망했으나 하치야 마유미는 앰풀을 깨물기는 했지만 재빨리 빼앗기는 바람에 [[자살]]에 실패했다.[* 청산가리라는 네임드급 맹독성 물질을 바로 빼앗기긴 했다지만 살아남은 것이 용하다. 아예 섭취조차 못 했거나 했어도 치사량에 훨씬 못 미치는 양이던 모양이다. 다만 떠도는 카더라에는 3일간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얘기가 있고, 담당 의사가 "쟤 쇼하는 거야"라고 슬쩍 흘렸다는 음모론도 있지만, 어쨌든 그녀는 사지 멀쩡하게 자살에 실패했다.] 처음에는 두 사람이 위조된 [[일본 여권]]을 사용했기 때문에 [[일본]]으로 송환되어 조사를 받을 예정이었으나, [[대한민국 정부]]에서 청산가리 앰풀을 깨물어 자살하는 것은 [[북한]]의 수법이라는 주장을 제기하여[* 게다가 하치야 신이치, 즉 김승일의 허파에 박혀 있던 2ml짜리 유리 파편은 1974년 다대포에 침투했다가 자결한 북한 공작원들의 부검에서 나온 청산가리 앰풀의 파편과 동일한 것으로 밝혀졌고, 그의 치아는 북한에서만 쓰는 방식인 납으로 이를 땜한 흔적이 확인되었다. 그런데도 음모론자들은 1972년에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김일성]]을 만나기 위해 북한을 방문했을 때도 청산가리 앰풀을 소지한 적이 있는데 청산가리 앰풀이 뭐가 북한의 수법이냐고 주장했다. 청산가리 자살수법이 북한의 수법이라는 것이 아니라 부검 과정에서 나온 청산가리 앰풀 파편이 북한산이라는 것이 입증되었다는 건데 기초도 알아 먹지 못한 무식한 음모론이다.] 하치야 마유미를 최대한 빨리 국내로 압송할 수 있었다. 사건 수사를 담당한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는 [[1988 서울 올림픽]] 방해를 위한 북한의 [[테러]]로 결론짓고, 추가 조사를 벌여 하치야 마유미로부터 본명은 김현희이며 북한 [[정찰총국 해외정보국|조선로동당 대외정보조사부]]의 [[공작원]]으로서 지령을 받고 [[대한항공]] 858기를 폭파했다는 자백을 받아내었다. 또한 [[헝가리]], [[오스트리아]]를 비롯하여 김현희가 대한항공 858편에 잠입하기 위해 경유한 나라들에서 정보를 받은 결과 북한의 중앙통신의 베오그라드 지부에서 김현희를 목격한 정보도 확인했다. 수법은 [[시한폭탄]]과 액체 폭발물을 승무원들이 발견하기 어려운 곳에 몰래 두고 중간에 내리는 수법을 사용했다. 그리고 이들이 내린 이후 해당 비행기는 시한폭탄에 맞춰진 시간에 도달한 인도양 상공에서 폭파되었다. 김현희가 자살에 실패하고 한국으로 전향하자 '''[[김정일]]은 [[북한]]에 남아 있던 김현희의 가족들을 모두 [[요덕 수용소]]로 [[연좌제|보냈다.]]''' 이는 1995년 [[성혜림]][* [[김정일]]의 전처이자 김정일의 장남인 [[김정남(북한)|김정남]]의 모친.]의 언니인 [[성혜랑]]이 아들 [[이한영]][* 김정일의 전처인 성혜림의 언니 성혜랑의 아들이므로 김정일의 처조카였다. 1982년 9월에 탈북했지만 1997년 2월 [[이한영 암살 사건|북한 공작원에게 피살되었다.]]]과의 전화 통화에서 얘기했던 내용이라고 한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6022100209131001&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6-02-21&officeId=00020&pageNo=31&printNo=23117&publishType=00010|당시 신문 기사]]. 또한 김정일은 자살에 실패하고 남한으로 전향한 김현희 소식을 듣고 여자는 요물이라는 독설과 함께 김현희가 속했던 대외정보조사부(35호실)에서 여성 공작원들을 모두 방출하고 김현희를 교육한 노동당 조사부간부들까지 요덕 정치범 수용소로 보냈다고 한다. 김현희의 육촌 친척까지 평양에서 지방으로 추방되었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미국]]은 [[북한]]을 테러 지원국으로 규정했고 김현희는 [[사형]] 판결을 받았으나, 추후 음모론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막고자 일종의 살아있는 증거로 남겨 두려는 목적, 그리고 무엇보다 [[북한]]과 관련된 정보를 조금이라도 김현희로부터 더 캐내야 하는 차원에서 [[노태우]] 당시 대통령의 재량으로 전격 사면을 받았으며, 이후 본인의 회고록을 저술하기도 하고 가끔씩 안보 강연에서 모습을 나타내는 등 안기부와 국정원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 가고 있다. 그리고 2013년 1월 15일에는 [[MBC]]에도 출연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qVJYQMzoWI|당시 방송분의 일부]].[* 인세 8억 5천만 원을 유족들에게 내놓으며 용서를 빌었다는 기사.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25&aid=0002208141|#]]] 이 사건 후, 수뇌부에서 [[육군특수전사령부|특전사]], [[제707특수임무단|707특임대]]를 북한에 침투시켜서 북한의 핵심 표적에 대해 응징하는 보복작전을 계획했었다. 하지만 결국 작전 계획이 실제로 실시되진 못했다. 2019년 공개된 외교문서에 따르면 북한은 당연하다는듯이 항공기 폭파를 남한의 조작이며, 당시 당 서기인 [[황장엽]]과 루디 아른트 [[유럽의회]] 사회당 그룹의장의 북한 방문 당시 이같은 입장을 표명했다. 황장엽 당시 당서기는 아론트 그룹의장에게 한반도 분단은 외세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주한미군]] 철수 등을 통해 [[적화통일|한반도를 통일]]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는 특히 1987년 11월에 발생한 KAL기 폭파 사건과 관련해 유럽의회가 대북 규탄 결의안을 채택한 데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출했으며, 그는 이 사건이 "생명보험금을 타기 위한 남한의 조작"이라고 주장했던 것으로 드러났다.[[http://www.newsis.com/view/?id=NISX20190331_0000604715&cID=10301&pID=10300|#]] 이듬해 1월 중앙아프리카의 외교행사장에서 오경환 당시 북한 대사가 김승호 당시 한국 대사에게 "남조선이 도전적인 태도로 나오면 좋지 않을 것이다.", "오늘밤 죽여버리겠다."라고 폭언을 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또, [[산케이신문]]이 KAL기 폭파 사건을 남북 지도자를 변태 성욕자로 묘사하는 만평에 논란을 불러일으키자 외교 경로를 통해 편집장 파면과 만화가와의 계약 해지, 산케이 그룹 회장의 사죄, 사과문 게재 등을 요구했고, 그렇지 않으면 산케이 서울 지국을 폐쇄하겠다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결국 산케이 그룹 의장이 [[최광수]] 외무부 장관을 방문해 사과하면서 한국 측 요구가 관철됐다.[[https://www.ytn.co.kr/_ln/0103_201904080414111939|#]]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